어느새 해가 바뀌어 2011년인데도 자꾸 2010년으로 착각하네요.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년도입니다.
새해에 세워둔 계획들을 잘 실천하고 계시는지요.
다음 작은 어떤 작품이고 언제 나오나 많이 궁금해하셨죠? 저도 알려드리고 싶어서 발 동동~~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심해보다 더 알 수 없던 작품 마감이 차곡차곡 이루어지고, 동시에 폭풍 마감과 미친 스케줄로 나가 있던 제 정줄이 제자리를 찾아서 이렇게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이사님.”
나는 조금 정색을 하며 진현을 불렀다.
“응?”
“농담은 이제 그만 하시고 이제 일을 해야 돼요.”
“전혀. 진심 백퍼센트.”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 진현이 내 턱을 잡아당기고 눈을 마주 보게 했다. 긴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진한 눈빛이 나를 간질거린다.
“그래서 너는 싫어?”
“아, 아니요. 싫은 게 아니라 자꾸만 멀미하는 거 같아요.”
“토할 정도라 이거지.”
상처받은 양 낙담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던 진현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슬쩍 그 틈에 고백을 하기로 했다.
“아뇨. 너무 좋아서 어지럽다고요.”
말이 끝나기 전에 갑작스럽게 진현은 나를 끌어당겨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내 몸과 마음이 충만해질 정도로 꽉 끌어안은 진현을 나도 끌어안았다. 맞닿은 두 개의 심장소리가 노래처럼 귓가에 닿는다.
“안 되겠다,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너 때문에.”
나는 진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키득거렸다. 회사에서 진현은 매번 이런 식이다. 나만 보면 퇴근하자는 말을 했다.
“가자.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집에.”
“일이 운명인 여자라니까요, 저는.”
진현이 일어서려고 했지만 나는 어깨에 매달린 채 고개를 흔들었다.
“집에 가서 일하자는 얘긴데.”
“집은 위험한데.”
나는 재빠르게 일어섰다. 그리고 김이 다 빠졌지만 여전히 독특히 단 콜라에 담긴 빨대를 쭉 빨아들였다.
“더 무서운 게 있긴 하지.”
내게는 헝클어진 머리와 단추 풀린 셔츠를 입은 진현이 더 무서워보였다. 진짜 저러고 나가면 안 되는데.
“뭐가요?”
“네가 자판기 커피 마시는 거.”
“왜요?”
“잠을 안 자겠다는 얘기잖아.”
기다리는 데 달인 유진현 이사님은 참 매력적이에요. ㅎㅎ 말을 어쩜 저렇게 센스 있게 아슬아슬 잘하시는지!! >ㅁ<b
“그럼 당신은 무슨 자격입니까?”
린이 멈칫했다. 명훈이 비아냥거리듯 계속 말했다.
“당신은 왜 판단하는 거죠? 이렇게까지 화낼 만한 그런 자격이 당신은 있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반박에 그가 움직이지 못한 순간을 틈타 그의 손을 풀고 빠져나온 명훈이 주먹을 뻗었다. 가볍게 피한 린은 발길질에 사정없이 걷어차여 땅에 쓰러졌다. 그가 신음을 삼키며 일어나는 동안 명훈이 말했다.
“의외로 다혈질에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군요. 당신 지금 순전히 남의 문제에 끼어들었다는 거 모릅니까? 내가 서은 씨한테 사과하고 서은 씨가 받아주는 걸로 끝나는 일을, 맞아도 서은 씨한테 맞아야지 이건 뭐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옵니다. 이쯤하고 가시죠. 서은 씨에겐 비밀로 해드릴 테니.”
“너는……그 이름 부를 자격도 없어.”
“얘기가 도는데, 적어도 당신보다는 확실합니다. 남자 대 여자로 대시했고 정식으로 프로포즈도 했으니까. 친구인지 동료인지도 애매한 것보다는 훨씬 낫죠.”
“닥쳐!”
린은 명훈에게 덤벼들어 멱살을 잡아챘다.
“나 하나 정정당당하게 못 밟아서 상관없는 여자나 이용한 주제에! 복수를 하던 뭘 하던 나한테 하란 말이다!”
“진짜 ‘상관없는 여자’였다면 서은 씨일 이유도 없고 당신이 이렇게 열을 낼 이유도 없었겠죠. 복수라는 건 그런 거 아닌가요?”
린의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명훈이 정색하고 쏘아붙였다.
“확실히 해요. 왜 내가 당신한테 맞아야 하는지, 당신이 서은 씨랑 대체 무슨 관계라고 이러는 겁니까?”
“……아무……관계도 아니지.”
린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적어도 그 사람한테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도 나고 못 보면 하루 종일 궁금한 것도 나야.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나 같은 놈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런 애매한 사이로라도 평생 볼 수 있는 편이 백 배 천 배 낫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그렇기 때문에……아무 관계도 아니고. 상관도 없어. 그러니까 난 널 죽여 버릴 수 있다고. 이 개자식아.”
이를 갈 듯 으르렁거린 마지막 말은 뒤이은 침묵과 함께 무겁게 가라앉았다.
멱살을 잡힌 채 묵묵히 듣고 있던 명훈이 입술 한 끝을 올리기 전까지.
노려보고 있던 린은 자신의 진심이 비웃음당하는 기분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분노에 이성을 잃기 직전 장난스럽기까지 한 가벼운 명훈의 말이 그를 뒤흔들었다.
“잘 들으셨죠? 서은 씨.”
린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어두웠고 가로등의 조명은 시원찮았지만 저편에 우뚝 선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그녀였다. 이서은.